031
소우란이 선물해준 디퓨저를 침대 옆 탁자에 두고, 소우란이 선물해준 이불 속에 파묻힌 신시아는 문득 자신의 방을 하나씩 채워가는 소우란이 준 물건들을 돌아보고는 괜시레 마음이 또 싱숭생숭해지겠지.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는 건가 걱정하지만 소우란은 그럴 능력이 되기 때문에 무의미한 걱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 다만 자신의 생활에 이렇게나 자연스럽게 파고들고 있는 것에 기분이 묘해져.
이전과 다르게 지금의 우리는 친한 사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지. 그런데 가끔 몰려오는 낯선 감정은 도무지 모르겠어. 혼자만의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가끔 묘할 때가 있어. 이것도 너는 알면서 아는 척하지 않는 걸까, 아니면 그저 나의 헛된 착각인 걸까. 생각은 끝도없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지만 부드러운 실크이불이 몸을 감싸고 디퓨저의 은은한 향에 점점 몸과 정신이 편안하게 풀리며 신시아는 어느새 잠에 들고 말겠지.
다음날 잘 잤냐는 소우란의 아침인사에 덕분에 푹 숙면을 취했다고 하면 소우란은 네게 잘 맞는 듯해서 다행이라면서 다음에 또 새로운 것을 선물해주지 않을까. 신시아에게라면 그 무엇도 아낌없이 줄 수 있다고 하겠지. 그런 소우란의 대범한 행동에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자신을 생각해주는 게 나쁘지 않아.
디퓨저를 다 쓸 때가 되면 소우란은 귀신같이 타이밍 맞춰서 그녀의 취향에 딱 맞을 만하면서 계절에 따라 새로운 디퓨저를 건네줄 거야. 그리고 1년 내내 모든 계절에 신시아의 생활에 깊게 스며 드는 소우란이겠지. 그리고 거기엔 눈을 뜨고 감는 모든 순간 자신을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소우란의 욕심섞인 마음이 담겨있을지도.
032
소샤 싸우는 거 보고 싶다... 웬만해서 둘이 싸우진 않을 거 같은데 만약에 싸우는 날이 오면 둘 다 무서울 거 같아. 아마 서로 절대 양보 못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견이 맞지 않아 싸우게 되는 거겠지?
033
문득 소우란과 신시아의 혐관이 보고 싶어졌어. 수많은 시공 중에 둘 사이가 현관인 세계도 있지 않을까? 서로가 끔찍하게도 싫지만, 서로를 잊을 수도, 거부할 수도, 진정으로 해칠 수도 없는 그런 혐관 있잖아. 살아있는 것이 서로에게 최고의 복수이며, 서로의 족쇄이며, 역린인 그런 관계. 자신의 세계에서 소우란과 신시아라는 이름을 지울래도 지울 수 없는 그런 혐관... 한 번쯤 보고 싶다.
034
근데 소우란과 신시아 둘 중 한 명이 죽는다 하면 그건 99%의 확률로 신시아이지 않을까. 소우란은 신기의 영향도 있는데다가 성격을 봐도 소우란은 좀 더 진중하고 계획을 세우는 편이라면 신시아는 일단 달려가면서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하는 편이라... 신시아도 진지할 때는 진지하지. 겁도 많고 걱정도 많아. 하지만 가끔 쓸데없이 자신감이 넘쳐 흐를 때가 있어. 어떻게든 될 거야! 라는 건 대책없는 것보다도 시도도 하지 않고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자라는 의미라서 용기가 많다는 뜻이겠지. 그래서 신시아는 소우란보다 한발자국 먼저 앞으로 나가.
035
분명 손만 뻗으면 그대로 품에 안을 수 있지만 신시아의 머리카락 한 올도 스치지 못하는 소우란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직접 소우란의 품속으로 뛰어들 수 있지만 망설이다 옷깃만 잡아버리는 신시아. 욕망을 꾹 삼킨 채 서로를 아무렇지 않게 대하려고 하지만 둘 사이에서 피어나는 아릿한 감정은 전부 숨길 수 없겠지. 마치 거울로 둘러싸인 방에 갇힌 것만 같아. 어느 것이 내 진심인지 모르겠어. 가까워지는 게 망설임을 불러일으키지만, 멀어지는 건 용납할 수 없어. 그러니 밀어내지 마, 여기에 있어 줘. 조금만 시간을 더 줘. 이 마음을 정의내릴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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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우란의 첫사랑은 신시아일까 궁금하지만, 소우란은 워낙에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닌지라 이건 아무도 모르고 소우란만 알지 않을까. 그리고 신시아에게 첫사랑은 소우란일 거야, 하지만 첫애인은 아니라는 점. 그동안 몇 번 사귀기는 했지만 신시아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잘 못 느꼈을 것 같아. 그냥 고백 받으면 받는대로 사귀어보긴 했지만 상대방에게 애정을 느끼지 못해 금방 헤어졌을 것 같아. 딱히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이 없어서 다들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첫사랑이 자신에게는 없지만 남의 사랑이야기는 꽤 좋아하고 동경하지. 이후에 소우란을 만나게 되는데 신시아에게 첫사랑은 없는 게 아니라 남보다 조금 늦게 찾아온 것 뿐이었어.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소우란의 첫사랑은 신시아였을 거야. 그녀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계절처럼, 소우란의 첫사랑은 그렇게 찾아온 거였어. 뒤늦게 사랑이란 걸 깨달았을 땐 흠뻑 취한 이후였지.
037
지휘사는 신기가 없잖아, 그러니까 자신의 몸 정도는 지켜야 하니까 소우란에게 사격을 가르쳐달라고 하는 신시아가 보고 싶다. 보스가 되기 전에는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고 일반인처럼 생활했을 테지만 야쿠자 집안이고, 이제는 보스인데 웬만큼 총을 다루겠지. 물론 중앙청에는 안화가 있으니까 안화에게 말해도 되지만 알다시피 안화는 할 일도 많고 바쁜 사람이잖아. 그렇다고 소우란이 한가하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믿을 만하면서 이런 쪽으로 잘 알만한 사람이 소우란이었기 때문에 소우란에게 부탁할 거야.
하지만 소우란은 "시아, 내가 있잖아. 네가 위험하게 두지 않아."라고 말하겠지. 신시아는 "알지만 매번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만은 없어. 피치 못할 상황은 분명 있을 거고, 나도 내 몸을 지켜야 해."라고 말하겠지. 그럼 하는 수 없이 소우란은 순응하고 신시아에게 총을 쥐는 법 부터 자세와 총기를 관리하는 것까지 자세하게 알려줄 거야.
그러나 소우란은 신시아가 총을 사용할 일을 만들지 않게끔 하겠다고 다짐하겠지. 언제나 그녀 옆에서 자신이 지키고 있을 것이고, 그녀의 손을 더럽히지 않게 하리라 맹세할 거야. 그리고 그 날 이후로 소우란은 비밀스럽게 신시아의 주변에 사람을 깔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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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우란과 신시아는 커피파와 코코아파로 나눈다면 둘 다 커피파...! 라고 생각해요. 신시아는 중앙청에 출근하자마자 커피부터 내리는 편인데 달달한 것도 좋아해서 기분이 조금 꽁기해져 있을 땐 코코아를 진하게 타먹기도 해요. 달콤한 초콜릿향에 빠지면 금방 기분이 좋아지겠죠. 그리고 소우란은 예전 같았으면 자주 마셨을 것 같지만, 신기사가 되어 돌아온 이후부터는 다른 음식과 마찬가지로 커피에도 손을 덜 댈 것 같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소우란의 집에 있는 커피머신은 이제 신시아 전용이 되어버렸을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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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우란 손에 핸드크림 발라주는 신시아가 보고 싶다. 새로 산 핸드크림을 바르다가 보들보들하게 잘 발리니까 좋은 건 나눠주고 싶은 마음에 소우란한테도 달려가 손등에 짜주는데 신시아가 직접 소우란 손을 잡고 손가락 마디 사이마다 꼼꼼하게 발라줄 것 같다. 신시아가 키가 큰 편이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남자와 여자의 골격차이는 있기 때문에 손 크기가 꽤 차이가 나다보니까 핸드크림을 발라주던 것도 잠시 잊고 길쭉하면서도 단단한 손을 신기하게 쳐다보 것 같기도 하다. 그럼 소우란은 그런 신시아를 가만히 바라봐주면서 그녀의 호기심이 멎을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을까. 소우란에는 신시아의 모습을 관찰하는 게 흥미로운 일일 테니까.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손깍지를 껴서 신시아의 움직임을 묶어 방해하기도 하고. 핸드크림 하나 바르는 것도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한 두 사람인데 그만큼 파우더리한 코튼향이 둘 사이를 은은하게 오래 메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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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을 보면 신시아가, 신시아를 보면 레몬이 떠오르는데 어느 날 곰곰이 생각하던 소우란은 신시아에게 작은 레몬 나무 한 그루를 선물할 거예요. 신시아는 자신의 집에 들여 물을 주고 잎을 닦아주며 정성스레 가꿀 것이고 시간이 흘러 나무에는 열매가 맺겠죠. 정성으로 맺은 레몬을 따다가 깨끗하게 씻어 레몬청을 만든 신시아는 소우란에게 선물해줄 것 같아요. 그날 이후로 소우란의 집 안은 매일 상큼 달콤한 레몬 향으로 물들 테죠. 그가 선물한 레몬의 꽃말은 '진심으로 사모함'. 꽃말을 아는 소우란은 자신의 마음을 빗댄 결실이 그녀의 정성으로 돌아와 만족스러움과 동시에 아직은 완전히 그녀에게 진실한 마음을 전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을 테지만, 소우란은 더 큰 것을 낚아채기 위해 인내하고 기다릴 거예요. 그리고 사실은 신시아도 레몬의 꽃말을 알고 있을 거예요. 그를 위한 레몬청에는 설탕 한 스푼 대신 마음을 몰래 담아 만들어졌으니까요.